그 1탄으로 대하 역사 8부작 한국의 소프트웨어 역사를 포스팅할 계획입니다. 지금이야 컴퓨터 없으면 원시인 취급 당하는 세상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컴퓨터를 가진 집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삼성 알라딘, 대우 아이큐, 금성 파트너 등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광고 속 부모님이 자녀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눈물을 뿌리며 PC를 구입, 그러나 그 결과는 최고급 게임기였던... 그 때를 아십니까?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을 겸해 60년대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빈국’과 최첨단 ‘IT’의 숙명적 만남
우리의 IT 역사는 대개 1967년을 출발점으로 잡습니다. 그 해 우리나라는 경제기획원이 미국제 IBM 1401 컴퓨터를, 한국 생산성 본부가 일본제 FACOM 222 컴퓨터를 도입했습니다. 이 두 사건은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컴퓨터를 도입한 첫 사례입니다. 이 두 제품은 각각 우여곡절의 도입 과정을 겪었던지라 서로가 최초의 도입 제품이라는 기록적 가치를 두고 종종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선후를 규명하는 일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나라가 최빈국 대열에 놓여 있던 1960년대에 IT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사회의 최후진국으로서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1차 경제개발 계획을 끝내고 2차 계획이 막 진행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따라서 1967년의 컴퓨터 도입은 획기적인 국가 대사였죠. 물론 당시에 최첨단 기술인 컴퓨터 산업을 육성해보겠다는 의지는 없었지만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는 IT강국의 대열에 놓여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최빈국’의 최첨단 ‘IT’ 도입은 세계사에 기록될만한 숙명적 만남이었던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IT는 우리 민족의 특성과 잘 맞아 떨어진 듯 가속페달을 밟으며 질주해 왔습니다. 1967년 이후 우리나라의 컴퓨터 활용 능력은 초고속으로 발전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컴퓨터 국산화에 대한 의지가 1980년대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IT 개발에 대한 도전은 오늘날 세계 시장을 자랑스럽게 누비는 메모리반도체나 휴대전화, 그리고 LCD 모니터 등의 일류 상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초고속인터넷망 등 고도화된 통신 인프라를 구축, 인터넷 강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일류의 IT 활용 국가로 성장
지난 40여년의 IT 역사를 통찰하는 데 있어 본능적으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시 IT 산업의 형성과 국산 개발 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IT 역사가 거둔 가장 두드러진 수확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활용 능력임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최근 미국에 본부를 둔 CIO 리더십센터가 의미 있는 조사 결과를 내어놓았습니다. 이 센터는 한국 CIO 56명을 포함한 전 세계 45개국, 32종 업계에 걸친 300여명의 CI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리더십, 비즈니스 전략 및 프로세스, 혁신 및 성장, 조직 및 인력 관리 등 CIO로서의 성공에 필수적인 4가지 영역을 놓고 CIO들의 역량과 능력을 평가하는 조사였죠. 그 결과 놀랍게도 한국 CIO들의 역할 비중이 글로벌 평균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한국 CIO의 90%가 ‘IT가 경영 활성화에 기여한다’고 평가했죠. 이에 따라 조직의 리더로서의 위치도 견고해진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참고 : CEO? Chief Executive Officer의 준말로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의미합니다.
결론 : CEO가 되는 법 : 오너한테 잘 보이세요.
이 같은 조사결과가 아니라도 우리의 IT활용 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리가 ‘IT 강국’으로 치켜세워진 데는 ‘IT 얼리어답터’라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판단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IT 활용 능력이 산업을 일으키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낸 것이죠.
정부 기록에 따르면, 경제기획원의 IBM 1401과 한국생산성본부의 FACOM222가 도입된 1967년 이후 1971년 말까지 우리나라는 정부 및 일반 기업 등 35개 기관에 총 36대의 컴퓨터를 도입했습니다. IBM, 유니백, 화콤, CDC, NCR, 버로우스, PDP 등이 도입 제품들입니다. 5년간 36대의 컴퓨터는 수량 측면에서는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이 컴퓨터들이 우리나라 IT 발전의 시동을 걸며, 그야말로 초석이 되었습니다.
거침없이 부는 1960~1970년대 컴퓨터 활용 바람
이들 기종이 도입돼 황무지의 전산 역사를 개척한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971년 체신부는 CDC 기종을 도입, 전신전화요금 처리업무를 EDPS(전자식 데이터 처리 시스템)화 합니다. 이는 기존 업무 처리 시간을 엄청나게 감축시킨 것으로 훗날 전화 대량 보급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시의 중학교 무시험 추첨과 대학예비고사 채점 전산화 등은 국가 행정 전산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공기관의 컴퓨터 활용은 빠르게 금융권을 비롯, 일반 기업으로 전이되었습니다. 민간 기업으로는 유한양행이 1968년 IBM 1401을 도입함으로써 첫 컴퓨터 도입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1969년 락희그룹(현 LG그룹)이 IBM system/360-25를 도입, 민간 기업의 컴퓨터 활용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습니다.
오늘날 최대 IT 시장을 형성하며, 세계적인 수준과 규모를 자랑하는 금융권의 전산화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걸쳐 불을 뿜습니다. 제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가시적 성과에 따라 금융권 업무가 폭증하면서 금융권이야말로 전산화가 가장 시급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부 주도하에 1969년 13개 은행이 공동출자한 금융기관 사무기계 개발위원회가 창설되고 그 산하기관으로 금융단 전자계산본부(KBCC)가 출범합니다. KBCC가 초창기 은행공동전산센터로서의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그러나 금융권의 전산화 바람은 공동센터로 만족하기에는 초기부터 너무 거세었습니다. 곧 KBCC의 공동 업무 처리는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1975년 농협중앙회를 시작으로 은행별 각개약진이 펼쳐졌습니다. 특히 외환은행은 다른 은행들과 달리 처음부터 KBCC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인 전산화를 추진하며 컴퓨터 활용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첫 온라인 뱅킹을 시도, 서울-부산 간 개통에 성공함으로써 IT 역사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이 글은 SPC 협회보 'SW 저작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세계 일류의 IT 활용 국가로 성장!!
어플이 많이 팔린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