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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정품당당/IT/SW 이야기 2009/09/23 18:55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는 세계로부터 ‘IT 강국’이라는 화려한 수사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명성은 이내 시들해지고 있습니다. ‘IT강국’의 동력이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IT 강국 저 뒤편에 가려진 소프트웨어 산업의 취약성이 그 주요한 원인입니다. 우리는 40여년에 달하는 IT 역사를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세계적으로 걸출한 개발 역사가 빛나고 있으며, IT 강국으로 불릴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산업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큽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예나 지금이나 척박한 풍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나라 초창기 IT 역사를 통찰하고, 마치 끈질긴 우리 민족성처럼 자생해 온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1부 - 최빈국과 최첨단 IT의 숙명적 만남에 이어 2부 - 소프트웨어 강국의 기반을 연재하겠습니다.


IT 인력 양성으로 IT 산업 토양 마련


1960~1970년대 컴퓨터 도입은 역사적으로 업무 전산화라는 컴퓨터 본연의 임무로 전방위적 국가 발전에 기여한 바가 컸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더 큰 역사적 의미는 수많은 IT 인력을 배출해냈고, 마침내 오늘날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성장동력으로써 IT 산업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 IT 산업을 이끌어온 인력 산실의 시원을 찾아보면 바로 초창기 컴퓨터 도입과 연결됩니다. 1967년 FACOM222를 도입한 한국생산성본부 산하의 전자계산소(KCC)와 같은 해에 발족한 KIST 전자계산실(후에 시스템공학연구소가 됩니다)은 우리나라 IT 인력 배출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으며, 그 밖에 IBM1401의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및 육군본부 등이 IT 인력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1969년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CDC-3300 기종을 임대한 KIST 전자계산실의 역할은 지대했습니다. 체신부의 EDPS부터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전산시스템 개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주요 공공업무의 전산화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고급 전산 인력을 배출해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KIST는 아름다운 전경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출처는 KIST 홈페이지


이와 함께 대학들의 컴퓨터 도입도 활발했습니다. 이는 젊은 인재 양성의 기반이 되어 1880년대 중반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의 왕성한 개척시대를 열어가게 됩니다. 우리나라 대학의 첫 컴퓨터 도입 사례로는 1969년 유니백 기종을 들여온 서강대가 최초이며, 이어 1960년대에 연세대, 한양대, 숭실대가, 1970년대에는 서울대, 중앙대, 동국대, 광운대, 홍익대 등이 그 뒤를 잇습니다. 대학들의 컴퓨터 도입은 전산 인력을 양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며, 마침내 숭실대는 1970년 공과대학 내에 국내 첫 전자계산학과를 개설합니다.


컴퓨터 활용 능력이 IT 산업을 일구다

1960~1970년대의 컴퓨터 도입 현황을 살펴보면, 국내 컴퓨터 도입 대수는 1969년 17대, 1971년 36대, 1973년 66대에 이어 1975년에는 129대까지 증가합니다. (그래봐야 요즘 PC방 하나 크기만 못하군요;;)


요즘 유행하는 대륙의 PC방 샷 하나 중국서 퍼 옵니다-_-; 무려 1777석이라는군요.


여하튼 초창기 정부 및 공공기관이 주도한 컴퓨터 도입은 금융기관과 교육기관으로 이어졌고, 1970년대 중반에는 본격적으로 민간기업까지 확산됩니다.

민간기업의 전산화 바람은 곧 우리나라 IT 산업의 태동을 의미합니다. 초창기 컴퓨터 활용 인력들이 삼보컴퓨터나 큐닉스컴퓨터 등 컴퓨터 업체를 설립했는가 하면, 1980년대 본격 형성되기 시작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주역을 맡았습니다. 1986년 기준 과학기술처(현재 교육과학기술부) 등록 소프트웨어 309개 사를 분석해보면, 70% 이상이 1980년 이후 설립되었죠.

1980년 이후 해마다 20~30여 업체가 설립됐으며, 이 무렵 대기업들은 전산실을 통해 대형 전문 소프트웨어 업체를 설립하는 붐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삼미전산(1983년 삼미그룹), 쌍용컴퓨터(1971년 설립한 우신정보시스템), 유니온시스템(1984년 조선공사) 등을 비롯 1985년 금성소프트웨어와 삼성데이타시스템 등이 이 무렵 설립된 대표적인 대형 전문 소프트웨어 업체들입니다.

중견 그룹들도 소프트웨어 계열사 설립에 나서기 시작하는데 정우개발, 대한해운그룹, 동일, 삼일회계법인 등이 그 예입니다. 이들 그룹전산실 출신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향후 SI 사업으로 발전했으며, 1970년대 국내 건설업계가 중동 붐을 일으켰듯이, 오늘날 풍부한 IT 활용 경험과 능력으로 세계 IT 서비스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1980년대는 무엇보다도 전문기술을 보유한 젊은 인재들이 대거 소프트웨어 산업에 뛰어들어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과잉의욕, 경영미숙, 일감부족 등으로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가장 값진 소프트웨어 산업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 용역이나 외산 대리점 역할에 치중했던 대다수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들과는 달리 국산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스타 벤처인들이 탄생함으로써 수많은 청년들을 IT 산업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SPC 협회보 'SW 저작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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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Information Technology Magazine 2011/02/08 08: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플이 많이 팔린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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